본문 바로가기
일본 문화와 사람

일본에서 오래 살면서 이해하게 된 일본인들의 생활습관

by 사유리양 2026. 9. 21.

처음 일본에서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꽤 많았다.

 

왜 저렇게까지 조심스럽게 말을 돌려서 하는지, 왜 속 시원하게 할 말을 직접 하지 않는지 궁금할 때가 많았다.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누구 하나 먼저 가려고 밀치지 않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정해진 대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몸에 밴 질서와 매너도 그중 하나였다. 처음엔 그저 신기하게만 보였던 이 모습이, 사실은 규칙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인 배려와 공정성의 습관이었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나 혼자만 이득을 보려 하지 않고, 모두가 기분 좋게 공공장소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려는 의식이 알게 모르게 사람들 마음 깊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밀집한 마을과 도시에서는 순서를 정하지 않으면 사회가 원활히 돌아가지 않았던 오랜 역사가 있었고, 여기에 학교 교육과 철도 이용, 전쟁 후의 배급 제도를 거치면서 '순서를 지킨다'는 행동이 자연스러운 습관으로 굳어져 온 것이었다.

 

기계적으로만 보였던 그 질서, 사실은 서로를 향한 오랜 배려에서 나온 것이었다.

 



** '와(和)'의 문화 — 왜 일본 사람들은 직접 말하지 않을까 **

한국에서는 좋으면 좋다고 말하고, 싫으면 싫다고 비교적 분명하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직접적인 표현을 조금 완화하는 경우가 있다.
처음에는 애매함에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때론 오해도 하게 된다.

 

일본의 '직접 말하지 않는 문화'는 서로 '와(和)'를 지키고 상대를 상처 입히지 않으려는 배려에서 생겨난 소통 방식이라고 한다. '와'란 온화함과 조화로움을 뜻하며, 동시에 일본문화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강한 표현이나 분명한 'NO'는 그 자리의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거나 상대를 불편하게 만든다고 여기기 때문에, 말 속에 담긴 의도나 그 자리의 분위기를 서로 알아서 헤아리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가 뿌리내려 있다.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기 위한 지혜로 완곡한 표현을 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습니다"나 "조금 어려울 것 같네요" 같은 말이 실제로는 정중한 거절의 뜻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죄송하지만", "괜찮으시다면" 같은 말을 앞에 붙여 말의 모서리를 둥글게 만드는 것도 흔한 화법이다.

 

결국 상대의 표정과 말투, 말과 말 사이의 여백에서 진심을 읽어내는 것 — 그것이 일본식 대화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괜찮아요'라는 말도 상황에 따라 다르다.**

 

일본에서 생활하다 보면, 같은 말이라도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인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앞서 이야기한 '다이조부(大丈夫)'가 딱 그런 경우다. 가게에서 "봉투 필요하세요?"라는 물음에 "괜찮습니다"라고 답하면 거절의 뜻이지만, 몸이 안 좋은 사람에게 "괜찮으세요?"라고 물었을 때의 "괜찮습니다"는 정말 괜찮다는 뜻이다. 같은 단어인데도 앞뒤 상황을 함께 보지 않으면 정반대로 오해할 수도 있는 셈이다.

 

그래서 단어 하나만 듣고 판단하기보다, 그 상황 전체를 함께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조금씩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일본어 단어 하나하나를 사전 찾듯 해석하려고 애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표정이나 말투, 그 자리의 분위기까지 함께 살피게 되었다.

 

그러면서 언어를 배운다는 것이 단순히 단어를 외우는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라의 생활 방식과 문화를 함께 이해해야만, 비로소 말 속에 숨어 있는 진짜 의미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

 

일본에는 '메이와쿠(迷惑) 문화'라는 말이 있다.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을 지나치게 중시한 나머지, 개인의 행동이나 자기표현을 서로 제한하게 되는 일본 사회 특유의 경향이나 규범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문화의 특징을 몇 가지 꼽자면, 먼저 '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강한 의식을 들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엄격하게 배우다 보니, 공공장소에서의 침묵이나 주변에 대한 지나친 배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본래는 서로 눈감아줄 수 있었던 작은 마찰이나 부담까지도 '민폐'로 여겨 배제하려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오타가이사마(お互いさま, 서로 마찬가지라는 뜻)'의 정신이 점점 옅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여기에 주변과 다른 행동을 부끄럽게 여기고, 집단의 조화와 분위기를 무엇보다 우선시하게 만드는 동조 압력도 이 문화의 한 축을 이룬다.

 

이런 성향이 생겨난 배경에는 역사적·문화적 이유가 있다고 한다. 과거 벼농사를 중심으로 한 마을 공동체에서는 협조성을 흐트러뜨리는 일이 자칫 생사와 직결될 만큼 중요했던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화는 높은 수준의 공중 매너와 질서 있고 안전한 공공 공간을 유지하는 밑바탕이 되었다는 점에서 장점으로 작용하지만, 동시에 타인에 대한 지나친 눈치와 소외감을 낳고, 도움을 청하기 어려운 '살아가기 힘든 느낌'으로 이어지는 부작용도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자주 접하게 되는 생각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문화가 일상에서 드러나는 모습, 즉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태도다. 물론 일본 사람 모두가 똑같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마다 성격도 다르고 생활 방식도 다르다.

 

하지만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를 내지 않는 모습, 전철 안에서 통화를 자제하는 모습, 다른 사람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모습은 일상 속에서 어렵지 않게 마주치게 된다. 처음에는 이런 행동들을 단순히 지켜야 할 규칙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안에는 규칙 이상의 무언가가 담겨 있다는 걸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불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상대를 향한 작은 마음 씀씀이가 그 행동들 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친해지는 속도가 다르다**

 

한국에서는 처음 만난 사람과도 몇 번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금방 가까워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사람에 따라 조금 더 천천히, 시간을 두고 관계를 쌓아가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서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그렇게 조금씩 신뢰가 쌓이고 나서야 비로소 개인적인 이야기도 하나둘 꺼내게 된다.

 

실제로 일본의 인간관계는 마치 양파 껍질을 벗기듯, 몇 단계를 밟아가며 조금씩 깊어진다고 한다.

처음에는 날씨 이야기나 가벼운 인사말을 주고받는 '인사기'를 거쳐, "다음에 한잔하러 가요" 같은 말이 실제로는 그냥 인사치레로 끝나는 '사교적 인사치레기'를 지나게 된다. 그러다 개인적인 고민이나 취미, 겉치레가 아닌 진짜 속마음을 조금씩 꺼내 놓는 '자기개방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사이가 되고, 마지막으로 경어가 완전히 사라지고 서로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절친·신뢰기'에 다다르게 된다.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사람과 가까워지는 데에도 저마다의 속도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 빨리 친해진다고 해서 꼭 좋은 것도 아니고, 천천히 가까워진다고 해서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다.

 

결국 상대에 대한 배려와 매너로 그 사람의 친해지는 속도를 존중해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나도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 

재미있는 것은 일본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나 자신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철에서는 자연스럽게 목소리를 낮추게 되고, 줄이 있으면 당연히 뒤에 서게 되고,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는 조금 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일본의 방식'이라고만 생각했던 것들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생활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아마 이것이 외국에서 오래 살아간다는 것의 진짜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그 나라의 모든 것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나에게 맞는 것들을 하나씩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나 자신이 조금씩 변해가는 걸 지켜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일본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곧 일본을 이해하는 것일까.

오랫동안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것은, 사람을 한 가지 방식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본인은 이렇다." "한국인은 저렇다." — 이렇게 단정하는 순간, 실제 그 사람의 모습은 오히려 보이지 않게 된다. 일본 사람도 모두 다르고, 한국 사람도 모두 다르다.

 

다만 그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생활 문화가 있고, 그것을 이해하면 사람을 이해하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된다. 나 역시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지금은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